[스크랩] 오운 육기 - 6 -
山査는 산에서 나는 사과로 고기먹고 체한데 좋다고(채소먹고 체한데는 草果) 합니다.
山査는 肉質이 많으므로 통풍이 잘 되는 산 중턱이나 벌판에서 잘 자라고,
고원지대나 척박한 땅에서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또 계피나무는 너무 축축한 땅에서는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식물에 따라 각기 자생지역이 다르고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陽明燥氣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식물 열매의 맛을 보거나 잎 등을 보고 자생지역 등을 잘 판별할 수 있도록 관찰력을 기르십시오.
이번에는 향기입니다.
허준선생이 사향 대신 오래된 절간의 똥으로 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듯이 냄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냄새에는 陰인 香과 陽인 臭가 있습니다.
香은 냄새가 좋은 것이고, 臭는 악취지요.
우리가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그 냄새를 좋다고 합니까?
숨이 콱 막히지요.
이렇게 香은 통하게 하고 臭는 막히게 합니다.
또 香은 吸, 臭는 呼하게 하지요.
陰(厥陰, 少陰, 太陰)에 속하는 신맛이나 단맛은 삼키고 싶지요.
焦할 때 나는 냄새를 보더라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커피나 콩을 볶을 때의 구수한 냄새와 黑으로 아주 새까맣게 태울 때의 악취가 있지요.
前者는 少陰, 後者는 少陽에 해당합니다.
발효시키는 냄새나 술익는 냄새 그리고 메주 띄우는 냄새같은 것은 少陰君火에 해당하지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몇가지 비린내, 지린내... 등은 太陽에 속합니다.
비린내도 맡기좋은 것은 太陰(향긋한 바다 냄새 같은 것)에 속하고,
맡기가 거북한 것은 太陽에 속합니다.
그리고 香이 속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일 때는, 太陰의 香에 해당한다고 봐야됩니다.
厥陰에 관계되는 香은 시큼하면서도 아주 산뜻한 것입니다.
산에 가서 바람을 쐬는데 상큼함이 표현할 수 없도록 좋은 때가 있지요.
이렇게 시원하고 상쾌한 냄새같은 것도 厥陰에 해당합니다.
수목을 통해서 나오는 바람냄새같은 것이 기분좋은 厥陰風의 냄새입니다.
목욕 중에서도 風浴에 해당되지요.
수목과 교접을 하면서 땀이 촉촉하게 나도록 뛰는 것이 풍욕입니다.
옛날에 봄바람이 불 적에 신선들은 머리를 탁 풀어뜨리고
바람이 부는 동쪽을 향해서 바람을 쐬었다고하는 말이 있지요.
이것이 풍욕입니다.
그래서 厥陰은 익을 때 시큼하게 나는 아주 상쾌한 냄새이고,
少陰은 볶을 때의 구수하게 익는 냄새입니다.
향긋한 비린내나 달콤한 냄새는 太陰이지요.
또 향기가 사람의 어떤 감정을 자극시킨다면 어떤 독특한 향이 나올 것 같군요.
예를 들면, 肝硬化症 환자의 입에서는 간경화증 환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위암 환자에겐 위암 환자가 갖는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훌륭한 의학도가 되려면 코도 발달되어야 합니다.
구취에도 속에서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의 구취가 있고,
비린 구취가 있고, 냄새 맡기 역겨운 것도 있는가 하면
어떤 구취는 산뜻함이 향기롭기까지한 좋은 구취가 있습니다.
이런 예를 통해서 보아도 사람에겐 그사람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봅니다.
동물에게도 독특한 냄새가 있듯이 사람도 각기 독특한 체취가 있습니다.
인간의 향기가 동물의 그것과 다른 점은 좋은 냄새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도를 닦아 어느 경지에 오르면 향기가 난다는데 이것이 진짜 향기인 것입니다.
어떤 병에 걸리면 어떤 내음이 나는 것으로 미루어봐서도 알 수가 있겠지요.
따라서 식물도 어떤 내음이 나는 것이라면 그에 부합되는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가 있는 겁니다.
환자에게서 어떤 구취가 난다고 하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위장이 나쁠 때, 비장이 나쁠 때, 간장이 나쁠 때, 심장이 나쁠 때
냄새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 입에서 탄내가 자꾸 난다면 그 사람은 초조하다고 볼 수 있지요.
'아유-전 자꾸 요새 입안에 단내가 나요'
이것은 脾臟에 열이 있는 징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써요'
이것은 傷寒病에서 少陽病의 증상입니다.
口苦, 咽乾, 目眩(목구멍이 마르고 눈이 어질어질한 것)은 少陽病에 해당하는 겁니다.
입안이 단 것은 太陰으로 足太陰脾經에 열이 생겼을 때와
脾臟에 濕熱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지요.
'에이, 더러운 세상, 콱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했더니 입이 막 짭니다.
이 경우는 죽어버리고 싶다하는 어떤 공포라든가 긴장감, 슬픔 때문에 입이 짠 것이지요.
또 입이 매운 것을 느끼는 분도 있어요.
매워도 무엇인가 매운 향기이면서도 냄새가 좋은 향기같은 것은 들어마시게 되는 것이지요.
少陰이나 厥陰이나 太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더라도
매우면서도 향기라고 볼 수 없는 톡 쏘는 냄새,
그러니까 辛香이 아니고 辛臭인 고춧가루 냄새를 갑자기 맡으면 吸하게 됩니까?
후~후 하고 내뿜지요.
톡 쏘는 매운 냄새, 아주 자극적인 냄새는 陽明에 속합니다.
기분 나쁜 노린내나 털이 타는 냄새는 대체적으로 太陽에 속합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나도 식물관찰을 가보면 꽉 막혀버리지요.
무슨 기운을 어떻게 관찰합니까?
부분부분이 다르지요.
뿌리는 少陰인데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은 太陰濕이 되고 열매는 厥陰風이 될 수 있습니다.
가시가 있다면 陽明도 있는 것이고, 잎이 톱니바퀴처럼 생겼다면 少陽도 있는 것입니다.
식물이 꼭 한 가지 성질로만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 가지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부분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약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시가 있지만 濕地에서 자랐으니 太陰濕이겠지'하고 쓰면 안됩니다.
어느 땅에서는 고염이 되고 어느 땅에서는 감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특수하게 변하는 경우도 관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상황은 그때 그때의 경우에 맞게 관찰을 해야지, 외워서도 안되겠지요.
'감이군! 이것은 앞으로 어느 정도 크고 그 모양이 어떻게 되겠군!'
이렇게 예언을 할 것이 아니라 그 땅이라든가 환경 등을 충분히 살펴서 變種이 되는 경우까지도 읽어내야 합니다.
첫째는 부분 부분의 다른 점을 참조하고, 둘째는 부분의 이질요소를 참조하고, 셋째는 開花되는 시기를 참조하세요.
어느 철에 번성하느냐에 따라 성질상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예로 쌀과 보리 중 어떤 것이 더 차겠습니까?
보리가 더 찹니다.
五運・六氣를 공부한 사람이면 자연관찰을 자꾸해야 됩니다.
여름을 지나는 쌀이 보리보다는 덥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같은 술이라도 보리술이 더 차죠.
여름에 피는 꽃 나무와 겨울에 피는 동백꽃과는 차이점이 많지요.
동백꽃 씨는 기름이 많아요.
그런데 여름꽃의 씨에는 기름이 없습니다.
겨울에 피는 꽃들은 대체적으로 다 기름이 많아요.
그것은 足少陰腎經이 기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피가 手太陽小腸經에 해당한다면 기름은 足少陰腎經이 되고 인체에 비유한다면 精에 해당합니다.
기름이 많다면 정력적인 사람이고, 피가 많으면 부자로 잘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습관 때문에 인생의 진리를 곧잘 놓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道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습관 때문이지요.
어떤 부자가 눈이 튀어나오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보였더니 의사는
"아무래도 위장이 잘못된 것 같으니 내시경을 한번 투사해 봅시다"
위가 잘못되었으니 잘라내는 것이 좋겠다하여 수술을 하였지만 튀어나온 눈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흉곽내과를 갔습니다.
肺를 찍어보니까 아무래도 肺의 기관지를 수술해야 할 것같다면서 기관지의 일부를 수술해서 제거했지요.
그러나 소용이 없었어요.
이번에는 비뇨기과를 찾아가보니
"당신은 너무 色을 밝혀서 아무래도 전립선에 염증이 있는 것 같아요"
고환의 일부를 잘라야 한다고 해서 한차례 수술을 또 받았습니다.
그래도 처음의 눈알이 튀어나온 것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치과에 가봐도 별로 소용 없었으며, 안과에서 눈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상한 안경을 맞춰줍니다.
이쯤되고 보니 병은 고사하고 사람 꼴이 말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갔습니다.
정신과 의사 가로되
"여보시오. 여기 잘라내고 저기 잘라내고 당신은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삽니까?
이제 앞으로는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여태까지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입고 모은 돈 아닙니까? 그래서 눈알이 자꾸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는 은행에 맡겼던 돈을 몽땅 찾아가지고는 집과 승용차를 샀습니다.
"다 부서진 몸으로 오래 살기 틀렸으니 쓰고나 가자!"
이젠 단벌신사도 면해보고 전에는 와이셔츠 하나로 10년을 견디었는데
한번에 10벌쯤 맞춰입자 하고는 양복점을 찾았지요.
양복점 재단사가 기장 몇 인치 허리 몇 인치... 하다가 "목 16인치"라고 하거든요.
"아니? 무슨 소리야! 내 목은 지난 50년동안 14인치인데, 난 그 이상의 치수로는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선생님 목 사이즈는 16인치 입니다"
"아니오. 14인치가 내 사이즈요"
"진짜로 선생님은 16인치라니까요"
"아! 글쎄 14인치라니까"
이러다가 싸움이 벌어질 판이 되었는데,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습니다. 14인치로 원하시니 해드리긴 합니다만
손님께서 목이 졸려서 눈이 튀어나오고 혓바닥이 빠져나오고 눈알이 퉁퉁 붓는 병에 걸릴 확률이 많습니다"
"무엇이라고? 당신이 내 병을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이사람 멀쩡한 몸 병원다니며 다 망치고난 뒤에 우습지도 않게 깨달았지요.
이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와이샤쓰 2인치 차이 때문인걸 갑상선의 이상이라느니, 가슴이 어떻다느니,
신장이 어떠니 불알이 어떠니 이빨이 어떠니 했던 엉터리 같은 의사들 만나가지고 노리개가 되었는데
알고보니 병의 원인이 고작 와이샤쓰 2인치 차이에 있더라는 이야기지요.
'와이샤쓰 2인치 差'.
깨달음이란 이렇게 쉬운 겁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여러분들의 소홀함 때문에
'와이샤쓰 2인치 差'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와 같은 것들이 여러분들의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으니까요.
"方藥合編"서문을 보도록 합시다.
어떤 책이든지 읽을 때 저자의 서문이라든지 역자의 후기를 안 읽는 사람은 그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는 필자의 진심 토로가 몇마디 들어있지요.
"方藥合編"은 "東醫寶鑑"을 다이제스트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돌팔이들을 많이 양성시켰다는 어느 한의학자의 항변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실을 저자가 예상 못하고 책을 쓴 것은 아니지요.
책을 펴낼 적에 그러한 염려를 무척이나 했습니다.
한약인구라고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는 떠돌이가 3만명, 한의사가 약 4~5천명
그리고 돌팔이와 한약업사, 거기다 건재약방 사람들까지 합치면 총 한약인구가 약 10만명쯤 되는데
그 사람들 중에 "方藥合編"한권 안들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의 아버지들만 보아도 좀 유식하다 하면 "方藥合編"을 보고서
"얘야, 가서 十全大補湯 좀 지어 오너라"
"가서 雙敗湯 좀 지어 오너라"고 합니다.
아무리 "方藥合編"이 옛 사람들의 필수 애독서라 해도 이건 안 되지요.
陰陽의 이치를 깨닫지도 못한채 그렇게 濫讀하면 곤란하지요.
난 레미제라블을 읽었다. 어떻게 흘러가다가 끝 부분에서 죽었다. 또는 복수를 하고 결혼을 했다고 이야기하지요.
우리는 소설을 그렇게 읽습니다. 지금은 다이제스트 시대입니다.
이 강의도 어떤 의미로는 "東醫寶鑑"의 다이제스트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이제스트가 가지고 있는 나쁜 면보다 좋은 쪽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陰陽觀도 없이 마구잡이로 무슨 병에는 무엇,
그냥 무슨 탕 무슨 탕 무슨 탕 하는 정도로 오용이 되면
"方藥合編"의 해독은 무지하게 크게 되지요.
제가 떠돌아 다니던 시절에 어느 돌팔이가 경영하는 집에 의사로 들어가고,
그 사람은 업주로서 있었는데, 글쎄 이 사람이 내가 자리만 뜨면 자꾸 진찰실로 들어 오려고 폼을 잡아요.
이 사람이 환자를 보면 병명이 한결같이 같아요.
무어라고 하냐면 무조건 "신우신장염" 눈이 아파서 오는 경우에도 그렇고 위장이 아파서 와도 신우신장염...
조그만 종이에 처방을 적는데 하나같이 五積散 하나 뿐이었어요.
무조건 이 약을 줍니다.
정말 사람 잡는 것이지요.
쇠고랑차기 딱 알맞죠.
"方藥合編"중의 처방 하나로 어쩌다 환자가 나으면 그것만 외워서 쓰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 또한 엄청나게 큰 잘못입니다.
"方藥合編 序文"
"오호라! 선친 혜암공이 저술한 方藥의 서적이 상당히 많으나, 거기에는 모두 저자인 자기의 이름을 적어 두지 않고,
다만 施治者로 하여금 잘 치료하기에 손쉽게만 하였으니, 남에게 지식을 공개하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음이 이러하였다.
그의 저서 중에 "活套"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글이 간명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조리가 명료하여,
누구나 한 번 보면 병증을 관찰해서 치료할 수 있었으므로, 본래 의학을 전공하지 못한 사람조차도
이 책을 갖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인쇄 발간하여 공급하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던 중에,
마침 동네 분들이 인쇄를 도모하여 본을 가지고 와서 아버님께 고하니,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책이란 물론 펴서 전하는 것이 가당하나,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달렸으니 서둘러 펼 필요는 없으며,
또 사람들이 본초를 읽지 않는데 치료법만으로서야 어찌 활투를 다 한다고 하겠는가.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은, 구세코자 하는 뜻은 간절하나, 역시 증상이 비슷한 딴 병으로 알고
잘못 施治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망설이오'라고 하였다.
그래도 동네 분들의 요청이 더욱 간절하매 세상에 수응하려는 뜻을 끝내 막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서 연로하시기 때문에 몸소 책의 초를 잡을 수가 없으므로, 이 자식에게 책을 넘겨주면서,
서례는 왕인암의 "본초비요"와 "의방집해"를 합편한 방법을 본뜨되, "손익본초"를 먼저 놓고
거기에 용약강령 및 구급과 금기 등 십여 가지를 더 보태어 "방약합편"이란 책명을 붙이라고 명하셨는데,
일이 반도 진척되지 못했을 때에 아버님이 우연히 병을 얻어
'내 병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니, 약으로도 목숨을 연장할 수가 없다.
완전무결한 양의란 그 생사를 식별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시고
끝내 약을 복용하지 않다가, 이 해 8월 17일에 별세하셨다.
아아 슬프다! 자식으로서 선친의 세법을 계승하고 아버님의 책을 채 다 읽지도 못했는데,
하물며 아버님이 전하신 바를 감히 초잡을 엄두가 나겠는가.
그러나 동네 분들이 시작한 판각이 중단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
장례를 치른지 두달만에 눈물을 닦으면서 일을 끝내어 이것을 판각에 돌렸으니,
다소 잘못된 데가 있음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책을 펴지 않았다고 한 것은, 선친의 뜻을 좇아서 의명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본서의 전말을 약술하고, 이에 관한 감회를 덧붙인다.
아아!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이요, 아버님의 노파심을 상기해주소서.
고종 21(서기 1884)년 갑신 12월 상순. 혜암공의 아들 불초 黃泌秀는 피눈물을 머금고 삼가 씀.
"본초도 읽지 않고 入經(다른 말로는 귀경이라고 함. 약물의 작용이 장부경맥의 관계와 결합해서
어떤 약이 어떤 장부경맥의 병변에 대하여 일정한 치료작용을 하는 것을 말함)도 모르고
맛도 모르고 볼 줄도 모르는 자들에게 치료법만을 가르쳐 주고서 어떻게 활용을 다 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널리 펴서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증상이 비슷한 다른 병으로 잘못 알고 施治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우리 사부님과 동명인 혜암 公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첫째는 증상은 같은데 약이 다른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浮腫에는 陰虛浮腫과 陽虛浮腫이 있습니다.
陰虛浮腫에는 六味地黃湯에 牛滕, 車前子를 가미하여 처방합니다.
陽虛浮腫일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같은 부종이라 하더라도 氣가 부족하여 부종이 왔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補中益氣湯에 이뇨제를 가미하면 좋습니다.
퉁퉁한 사람들이 氣가 부족하여 虛性으로 오는 陽虛浮腫에는 藿香正氣散에 利尿之劑를 가미해도 좋습니다.
氣를 보충시키는 약이니까.
신장염에 무조건 이뇨제를 쓰면 부종은 다 낫습니까?
陰虛와 陽虛의 구별이 없으면 자칫 큰일나는 거지요.
여러분 앞에 두통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두통에는 '蔓荊子散'이 얼른 떠오르겠지만,
무슨 두통이지요?
陽明頭痛? 太陽頭痛? 少陽頭痛?
사람은 뚱뚱해? 말랐어?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의사의 기본자세입니다.
여자라면 經度를 물어보아야 되고 성격, 취업, 환경, 취미 등을
수사관이 수사대상을 면밀하게 검토하듯 신중해야 합니다.
실제로 수사보다도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경솔하게 대하는 사람이 많지요.
수사관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것처럼 우리도 유심히 보아야 되는데도 외운 것으로만 대충 넘어 가지요.
둘째는, 증상은 다른데 약이 동일한 경우입니다.
약은 똑같이 쓰는데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별명이 金 四物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耳鳴症으로 온 환자에게 四物湯,
眼部充血로 온 환자에게도 四物湯, 肩臂痛으로 왔는데도 四物湯, 口渴로 왔는데도 四物湯,
원 세상에 다섯 사람이 다녀가도록 계속 사물탕만 쓰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밑에서 배우던 제자가 무조건 사물탕이면 되는줄 알고서는
12살에 들어와서 겨우 스무살인데 바로 개업을 하고 싶어서 안달복달을 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절대로 30년 제자 노릇하기 전에는 개업을 안시켰지요.
허준선생이 개업을 한 때가 언제인지 압니까?
40대 넘어서지요. 고생을 무지하게 했지요.
유의태 선생님 집에 가서 10년을 똥빨래해주고 그 아들에게 얼마나 멸시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金 四物의 제자가 10년만에 자립해서 나가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金 四物이 "나가는 것은 좋은데 너 내이름으로 개업하지 마라"고 했지만 그렇게 안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 밑에서 10년이나 있었는데 10년 동안 맨날 본 것이 사물탕인데 陰과 陽을 동시에 볼 줄 아는 觀이 있을리 없지요.
칼날이 양쪽에 다 있는 양날검을 禪家에서는 '깨달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도무지 陰陽觀이라곤 없는 제자놈이 급기야 金 四物한약방 옆에다
元祖金四物한약방이라고 간판을 내 걸고는 사람들을 현혹시켰다고 합니다.
해장국 원조인 할머니는 그저 해장국을 맛있게 끓이는데 전념하는데
바로 옆에 '元祖해장국', 또 그 옆집에 '진짜 원조 해장국'
또 그 옆집에는 '원원원조 해장국' 개업이야 누군들 못하겠어요?
觀이 없던 그 제자놈은 6개월도 채 못되어 줄행랑을 놓았다고 합니다.
이건 실화입니다.
이렇게 陰陽觀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들을 염려하여
"方藥合編"의 저자도 책을 지음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方藥合編"의 藥性歌 첫 藥物이 인삼이지요.
"人蔘味甘補元氣 止渴生津調榮衛"
옛날엔 七言絶句로 藥性을 외웠습니다.
藥性綱領도 빠짐없이 읽어보도록 하세요.
그런데 "일이 반도 진척되지 못했을 때 오호통재라 내 병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니
약으로는 목숨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良醫는 생사를 식별하는데 있다'며,
그래서 약도 복용치 않으시다가 8월 17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슬프도다. 오호라! 이 책을 보시는 사람들이여, 아버님의 노파심을 상기하라
공의 노파심 헤아리길 간절히 바라노라... 외로운 아들 피눈물을 머금고 삼가 쓴다"고 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겁니다.
그리고 혜암선생의 원래의 서문은 "方藥合編 原因"바로 뒤에 있는 "醫方活套原序"입니다.
그 내용 중에 "지금의 세상 일이란 규범은 전할 수 있어도 솜씨는 전하기가 어려운데
한 때의 사견으로써 어찌 천하의 만가지 病變을 다 알게 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렇게 한다해도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면 되풀이 설명 해야만 의술이 늘 터이니
이를 어찌 감당하겠는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슬비가 나의 옷을 적실 때
나는 보지 않고 붓다를 본다
꽃잎이 소리없이 떨어질 때
나는 듣지 않고 붓다의 목소리를 듣는다.
醫者들이 환자를 대할 때의 마음자세를 적절히 표현한 禪詩의 하나입니다.
하나의 졸렬한 사견으로 천하의 萬變하는 이치를 어떻게 궁구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압축하면 "道 닦아라!"는 말씀이지요.
"투약은 형편에 따라서 적당하게 증감하고 치유는 경우에 따라서 선후를 가려서 할 것이다"
혜암선생이 제가 그동안 입이 아프게 강조했던 말들을 딱 한마디로 간추려서 써 놓았습니다.
"치유는 경우에 따라서..."라는 부분의 '경우'옆에다가 크게 괄호를 하고는 '陰陽'이라고 써 넣으세요.
陰陽에 따라서 먼저 치료할 것과 후에 치료할 것 즉 오래묵은 병, 최근의 병을 가려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한 환자가 당뇨병을 10년 동안 앓아왔고 최근에는 위궤양까지 얻었다면
그를 대한 의사는 먼저 위궤양을 다스려야 합니다.
"열 가지 병에 동일한 처방을 쓰기도 하고, 하나의 처방에 여러 가지 약제를 합하기도 한다.
초보자는 例方에서 뽑아쓰기가 어렵겠기에 方門을 분리한 다음에 이런 三系統으로 하여
補益, 和解, 攻伐의 세 가지 품성을 알게 하고 따로 운용법을 조금 설명하여
배우는 이가 책만 보면 대충 치료 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옛 사람이 한 것은 아니나 역시 對證投藥 정도는 될 것이다.
이대로 따라서 널리 응용하는 길을 추구하면 의문에 들어갈 것이다"
"東醫寶鑑"을 기본으로 하는 이 활투를 집대성해서 편집한 곳이 '游藝室'이라고 했습니다.
유예실이란 蕙庵公의 서재입니다.
1807년(순조 7년)에 태어나셨는데 고종 때에는 典醫도 지냈습니다.
또 찬화당이라는 약국을 열었던 당대의 명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