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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궁내 질환 관련 한동석님의 임상비화 소개

꿈과인생 2010. 5. 29. 14:43

아래 글은 한동석님이 大韓漢醫學會報 1966年 8月 號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최근 자궁근종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자궁 내 물혹이 있는 분들도 많고요. 이 글을 읽어 보면 그 원인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원인을 알면 치료법은 간단하겠지요.^.^


함께 읽고 공부해 보았으면 해서 퍼왔습니다. 다음 지식인의 한의학 방에 자궁근종에 대해 수많은 질문들이 올라오는데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하던 중 이 글을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오네요.^.^ 최근 산부인과 의사들과 보험사간의 밀약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 중 상당수가 자궁적출 수술을 받고 있답니다. 자궁근종 때문에 자궁을 적출하는 인간은 의사가 아니라 사기꾼입니다.


치료할 수 없으면 포기할 일이지 자궁을 들어내다니요. 두통을 못 고치면 머리를 자를 인간들입니다. 한의사들의 활약이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臨床秘話

韓東錫

  人間의 生理現象이 病理的 變化를 일으킬 때처럼 그것을 측량하기 어려운 때는 없다. 가령 患者가 어떠한 身上의 呼訴를 할 때 醫師는 당연히 그 속에 秘藏되어 있는 病魔의 秘密을 探索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事實上 難中之難事다. 왜냐하면 患者의 陳述하는 바가 患者 自身이 느끼고 있는 感覺的 現象인 것 뿐이기 때문이다. 人間의 感覺은 언제나 그 뒤에 伏魔殿과도 같은 幽玄世界를 背景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人間의 感覺 즉 感性的 作用은 一種의 幻像에 不過한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해 볼 때 感性的인 人間인 患者의 陳述이나 呼訴한 것을 따지고 보면 一種의 幻像이 自己를 演出하고 있는데 不過한 것이다.

  그러므로 醫師가 患者의 病理的 秘密과 問答한다는 것은 결코 容易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人間의 病理的 變化는 이러한 程度인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突然的인 異變을 나타내는 때가 있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갑자기 子宮에서 물(水)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든지 或은 밤(夜)사이에 눈(眼)이 튀어나와서 마치 개구리(蛙)의 눈처럼 되었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것은 變化 中에서도 特殊한 變化이며 또한 突然的인 異變인 것이다.

  그런즉 醫師가 萬一 이러한 境遇를 當하게 되면 당황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醫師는 이러한 경우일수록 그 態度는 沈着하여야 하며 그 머리는 慧智的이어야 하며 그 思索은 哲學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醫師가 그러한 姿勢와 準備를 갖춤으로써 만일 위와 같은 秘密을 探索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臨床秘話」다.

  筆者는 이러한 境地에 臨하고 있는 學界에나 自身이 經驗한 바와 硏究한 바에 對하여 理論的 根據를 紹介함으로써 學術的 批判을 받으려고 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글은 當分間 連載할 計劃인 즉 그 批判은 끝맺은 後에 있기를 부탁한다.


(一) 子宮出水

  1966年 6月 13日 31歲 가량의 靑年이 來院하였다. 그는 自己 婦人이 産後 2週日인데 子宮에서 물(水)이 터져 나와서 只今 ×××病院에 入院하고 있는 中이니 往診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唐惶하였다. 大抵 子宮에서 물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그 물 나오는 까닭을 都是 알 수 없기 때문이다. 或是 解産할 때에 醫師의 不注意로 因하여 膀胱을 破裂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症狀을 물어보았으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可能하면 그 往診을 避하려고 하였지만 그것도 不可能하다. 왜냐하면 그와 이야기하고 있던 바로 그때에 筆者의 親友 R氏로부터 그 患者를 잘 보아달라는 부탁의 電話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없이 그와 같이 ×××病院으로 떠났다. 나의 머리는 車 中에서도 그 生覺으로 가득했다.

  病院에 들어서서 患者를 診察하여 본즉 産後 2週日의 産母로서는 至極히 건강하다. 食事도 잘하고 大小便에도 異常이 없고 「컨디션」도 좋다. 다만 脈이 다소간 浮大하고 있을 뿐이다. 姓名은 禹希貞 年歲는 29歲 四象은 太陰人이다.

  그런데 子宮에서 물이 나오는 量을 물은즉 婦人들이 月經帶로 쓰는 綿布를 2枚씩 겹으로 깔고 있는데 30分間이면 물이 흐를 程度로 젖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言質도 주지 못한 채 黙黙히 病院門을 나왔다. 患者의 男便되는 靑年도 따라 나섰다.

  집에 돌아온 나는 沈黙에 사로잡혔다. 얼마동안 時間이 흐른 다음 나는 나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閃光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때에 바로 婦人들의 月經血에 물(水)이 섞여서 血色에 淡色을 띠는 境遇를 聯想하기 始作하였던 것이다. 醫書는 이것을 「經色淡者 痰也」. 「經色帶淡者 有水混之也」. 「經色 淡白氣血俱虛也」라 하였은즉 只今 이 경우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고 生覺하였던 것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이 患者의 境遇는 産後 2週日인즉 孕胎 中에 消耗했던 衝任脈의 피(血)를 다시 再生産하여야만 할 重大한 契機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造血作用에 沒頭하여야 할 衝任이 그 機能에 故障이 생겨서 피를 생산하지 못하고 反對로 이것이 물(水)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判斷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判斷 뒤에는 반드시 推理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醫學所謂 「血化爲水」라는 것인데 要는 人體는 어떻게 하여서 피(血)가 될 것이 물(水)로 變化할까? 하는 것을 解決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境遇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體內에 濕氣가 鬱結됨으로써 熱을 蘊釀하게 되고 이와 같은 邪熱 즉 濕熱이 蓄積하게 되는 경우에 이것이 衝任의 造血機能을 痲痺시킬 때 子宮에는 물(水)이 고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子宮에는 攝血機能은 있지만 攝水機能은 없다. 그러므로 물(水)이 不斷히 排泄하게 마련인 것이다.

  “둘째”로는 衝任經에 寒氣가 鬱結하여서 그것이 오랫동안 係留하게 됨으로써 寒生熱하여서 子宮의 造血機能을 압박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 때에 또한 子宮의 造血作用은 血化爲水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바 邪熱이 造血作用을 妨害할 때에 그것이 어떻게 하여서 피(血)가 물(水)로 변하는가? 하는 問題를 解決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醫哲學의 原理로서 말한다면 至極히 簡單하게 解決된다.

  즉 「寅申相火의 造血作用이 辰戌水나 丑未土의 非正常的인 沈滯象態와 結付될 때에 人體의 피(血)는 반드시 물로 變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讀者 諸賢 中에는 이 文句에 對해서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는 이와 같은 醫哲學의 原理인 陰陽五行의 原理를 硏磨하고 있는 數名의 同好者가 있다. 이분들은 이 文句를 보고 暫間 동안만 生覺하면 「그렇지」하고 快哉를 부를 것이다.

  勿論 筆者의 心境도 여기에서 이 原理를 解明하여놓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것은 簡單한 時間이나 紙面으로써 解決될 問題가 아니므로 不得已 略하거니와 要는 不斷히 變化하는 人體는 恒常 이 原理 그대로 運動하고 있다는 事實에는 어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人體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病變作用에서 實例를 들어서 硏究해보면 一目瞭然하게 理解될 수 있기 때문에 다음은 그러한 實例를 한두 개 들어서 硏究해보기로 하겠다.

  가령 우리가 항상 경험하고 있는 腫瘡에서 이것을 살펴보면 瘡이 發할 때에 그것을 詳察하여 보면 첫번에는 그 部位에 加熱되어서 炎證이 생기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前記한 바의 邪熱이 凝結하고 있는 狀態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凝結한 炎證은 그 狀態를 永遠히 계속해 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結局은 이것이 潰決하게 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腫瘡의 終結點인데 그 때에 터지게 되는 膿化作用이 바로 或은 濕化爲水요 或은 寒化爲水하는 狀態인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여기에서 이른바 子宮水畜作用도 또한 이와 같은 腫瘡의 生成原理에서 엿볼 수가 넉넉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더 가까운 데서 찾아보면 우리는 浮腫에서 이것을 엿볼 수가 있다.

  가령 극도로 수척했던 患者가 久病으로 因하여 水穀을 全혀 攝取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밤사이에 全身이 浮腫으로 變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물(水)이 大抵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것이 問題點이다. 萬一 患者가 水分을 많이 攝取하였다면 그것으로써 浮腫의 原因을 斷定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患者는 水穀을 全혀 攝取하지 못하였은즉 이것이 바로 血化爲水한 것이다.

  그런즉 이러한 部類의 病原因은 或은 痰(濕生熱 熱生痰) 때문에 惑은 寒(寒凝爲熱) 때문에 或은 氣血이 俱虛(氣血이 運行能力을 喪失하면 留而爲熱)하기 때문에 血化爲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바의 醫書의 「經色淡者 痰也」. 「經色이 帶淡者 有水混之也」. 「經色이 淡白者는 氣血이 俱虛也」라고 한 것은 上記한 바와 같은 原理에서 推愆한 것이 分明한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에 近來에 많이 發病하는 「子宮물혹」이나 水疝등도 이렇게 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아울러 느끼게 되었다.

  고요히 눈을 뜨고 窓밖을 바라보니 窓문에 쏴부치는 夕陽의 光線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患者의 男便되는 靑年은 아직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내가 「當身 婦人의 病은 治療할 수가 있습니다.」하는 말 한마디를 던졌던 바 靑年의 얼굴에서 歡喜의 紅潮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검은 구름이 자욱하다. 왜냐하면 내가 構想한 處方이 아직까지 患者 禹孃의 體質的인 特徵과 잘 符合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禹孃의 體質은 肝熱이 動하기 쉽기 때문에 肺가 影響을 받아서 高原水道之源이 枯渴하기 쉬운 體質인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의 病現象이 子宮水畜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一般的인 患者의 경우와 同一하다고 할지라도 治療技術을 實際로 施行함에 있어서는 이것이 重大問題로 擡頭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머리에서는 完全無缺한 方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窮餘之一策으로 다음과 같은 處方을 그려놓았다.

人蔘   一錢

半夏   二錢

茯苓   一錢

陳皮   一錢

川芎   一錢

當歸   二錢

白朮   二錢

香附子 二錢

甘草   一錢

麥門冬 二錢

五味子 一錢

黃芩   一錢

  그렇다면 이 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濕이 子宮에 鬱熱을 造成하거나 或은 寒이 鬱하여서 子宮에 鬱熱을 造成하던가 或은 氣血이 本虛하여서 그 循環作用이 活潑하지 못하기 때문에 드디어 鬱熱을 釀成하기에 이른다던가 하는 等等으로써 그 原因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런즉 이 病을 除去하기 爲하여서는 于先 二陳의 힘을 빌어서 健脾燥濕하는 한편 氣血의 運行을 順調롭게 함으로써 正邪의 勝負之氣를 調和시키는 것을 急先務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먼저 이러한 措處를 해놓아야만 子宮鬱熱의 基盤을 除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욱 重要한 것은 人蔘과 白朮의 功이다. 왜 그런가 하면 二陳湯의 君藥인 半夏가 人蔘 白朮을 얻으면 上焦에서 浮散하려고 하는 元氣를 下焦로 下降시켜서 마치 사라지려는 불을 모아놓는 것과 같은 役割을 하기 때문이다.

  좀더 仔細히 말하면 半夏는 補脾燥濕할 뿐만 아니라 「下逆氣而 行腎水」하는 特性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면 一切 上逆之氣를 모아서 腎인 生命의 本源點에 歸宿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本草에 半夏의 特性을 가르쳐서 「宣通陰陽而能眠」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這間의 消息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性能을 가진 半夏가 人蔘을 얻으면 人蔘의 肺中元氣(肺金속에 陽氣를 包藏함으로써 活力素를 만드는 것을 補肺作用이라고 한다)를 補하는 作用과 合勢하여서 耗散하려는 陽氣를 保護하면서 體內에 흩어져 있는 老廢物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白朮은 「利腰臍間血」하는 藥이다. 腰臍間에 있는 血을 利한다는 말은 腰臍間에 모이지 못하고 흩어지려는 血을 흩어지지 못하도록 묶어(束) 놓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考察해보면 二陳湯에 人蔘 白朮을 加함으로써 이루어진 六君子湯은 다만 補氣去痰하는 藥이라고 漠然하게 생각하던 思考方式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一身의 元氣를 그 元氣의 出發點인 丹田(坎位)에 모아놓음으로써 保護의 實을 거두는 것과 함께 耗散하려는 피(血)까지도 元氣와 같이 血海에 歸宿시키는 處方이라는 具體的인 事實까지도 아울러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子宮水畜之證을 治療함에 있어서 또한 解決하여야 할 일은 水邪 때문에 耗散되어버린 氣血을 本院點에 모아놓고 保護하는 일부터 먼저 할 수밖에 道理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患者의 境遇는 피가 다 물로 化하여 버렸기 때문에 極度의 子宮貧血症을 나타내고 있은즉 當歸 川芎 등의 調血劑를 써서 血의 生成作用을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吾人은 여기에서 當歸 川芎이 어떻게 調血하는가 하는 것을 于先 살펴보아야 하겠다.

  當歸는 心肝脾의 統血藥이다. 統血이란 말은 피를 丹田에 歸宿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藥名을 當歸라고 하였으니 피를 마땅히 돌아가야 할 곳인 丹田에 돌려보낸다는 말이다.

  그 다음 川芎은 潤肝補肝하면서 升陽開鬱하는 血中氣藥이다. 그런즉 川芎이 血中氣藥이란 말은 피의 動力藥이란 뜻이요 當歸를 統血藥이라고 하는 것은 피를 動에서 靜으로 誘導하는 藥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六君子가 氣血創造의 契機와 排水 做元의 要因을 만들어 놓은 뒤에는 반드시 當歸 川芎의 調血 養血하는 힘과 함께 함으로써만이 解産 後에 缺乏狀態에 빠졌던 造血之元이 復活하게 되어서 子宮은 自己 機能인 바의 攝血作用을 完遂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香附子를 가한 것은 香附子는 通行 十二經絡하면서 體內에 潛伏하고 있는 老化物이나 不純物을 除去하면서 循環作用을 活潑하게 하여 주는 作用이 큰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藥은 氣藥을 얻으면 行氣하고 血藥을 얻으면 調血하는 藥인데 그 中에서도 特히 子宮機能調節에 그 功이 큰 藥이다.

  그러므로 香附子와 甘草를 加하여서 衝任經의 活動을 爲한 豫備調節을 돌보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一般的인 境遇라고 하면 事實上 이 程度의 處方으로 끝날 것이다.

  그렇지만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患者의 경우는 肝火가 恒盛하고 肺金이 常燥하는 體質的인 特殊性을 지니고 있은즉 그 程度로는 病情에도 未洽한 點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위의 藥材들로 因하여 오히려 肺燥肝熱한 體質的 缺陷에 加一鞭함으로써 副作用을 招來할 것은 明若觀火할 것이다.

  그러므로 筆者는 여기에 麥門冬을 加한바 그것은 麥門冬으로써 潤肺淸心하면서 化痰行水하게 하여서 肺燥의 弊端을 防止하고 여기에다가 다시 黃芩의 苦寒性을 配合시켜서 心肺의 火를 瀉함으로써 肝火의 亢進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肺燥를 潤하게 하려면 生津之藥이 없을 수가 없고 肝亢으로 因하여 일어나는 陽氣의 耗散을 防止하려면 收斂之劑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러므로 五味子의 酸鹹之性을 빌어서 上焦耗散之氣를 收斂하면서 生津之源인바의 腎水를 불게 한 것이다.

  筆者는 이와 같은 處方을 만들어서 三日分 投藥하였다. 그러나 自信面에서 볼 때에 事實上 믿을 수 없었다. 왜 그런가 하면 麥門冬 五味子가 群隊燥劑中에 들어가서 果然 患者의 體質的 反抗을 막아낼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瞬間에 더 以上의 智能을 짜낼 수도 없었고 또한 그 이상 患者를 挽留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勿論 患家에서는 焦燥한 나머지 나를 向하여서 「나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지만 나는 다짐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窮餘之策으로 「如何間 이 藥을 3日間 服用하여 보시오. 그러면 무슨 反應이 나타날 것입니다.」하는 至極히 간단한 말로 應酬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患家의 말에 의하면 ×××病院에서도 課長以下의 모든 醫師들이 이러한 病은 처음 보았고 또 어떠한 原因으로 생기는 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入院해서 12日 동안에 檢査만 하다가 말았고 물(水)은 每日每日 增加一路에 있었기 때문 病院治療 뿐 斷念하는 나를 찾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事實上 나도 自身이 있다고 對答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服藥 期間 三日이 지나가기를 무척 기다렸다. 그러던 次에 果然 患者의 男便이 나타났다. 服藥 結果를 물은즉 「多少間 물의 量이 줄어든 같기도 하고 그냥 그대로 인 것 같기도 하여서 잘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三日分을 더 주었다. 그後 三日만에 患者의 男便이 다시 왔다. 나는 慌徒한 마음으로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다시 三日間 服用하였더니 患者가 배(腹)가 아파서 一時間假量 몸부림치더니 뜻밖에 흑색덩어리의 피를 下血했는데 그 다음 瞬間부터 물(水)이 딱 멎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 나는 마음속으로 快哉를 부르짖었다. 勿論 그 男便의 얼굴에는 喜色이 滿面해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넌센스」로는 病院의 主治醫들이 成績이 좋다고 하면서 거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患家에서는 저사람들이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勿論 그때까지 漢藥을 썼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막상 患家에서 退院手續을 하려고 하니까 病院 말이 「退院하면 再發할 念慮가 있으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 患家에서 火가 나서 「여보 당신들이 고친 줄로 아시오? 事實은 漢藥으로 고쳤소」하고 말하자 그들은 놀란 빛을 보이면서 「그 藥을 좀 보자」고 하기에 「지금 藥이 없다」고 한즉 「그러면 그 사람(漢醫師)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하기에 찾아가서 만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즉 그 다음에는 「檢査를 다시 해보자」고 하기에 「病이 나았는데 檢査는 해서 어디에 쓰려는 것이냐? 萬一 當身들 硏究上 必要하다면 實驗資料 提供에 對해서 應分의 實驗料를 支拂하여야 할 것이 아니냐」고 反問함으로써 應酬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病의 治療過程에는 이러한 한 토막의 「넌센스」도 있었다.

  그런데 그 男便의 말에 의하면 患者가 기운이 갑자기 깔아져서 큰일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역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말하면 藥과 體質의 相衝인 것이다. 그 때에 나는 다음과 갈이 生覺하였다. 물이 停止되었으니 調理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四象方의 太陰調胃湯을 3日分 주었다.

  그런데 그 後 3日만에 와서 하는 말을 들은즉 오늘부터 또 물이 조금씩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唐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가 하면 다시 먼저 썼던 六君子湯 加味方을 쓸려고 하니 體質的으로 나타나는 藥의 副作用을 막을 수가 없고 그렇다고 調胃湯을 그냥 쓰려고 하니 물을 막을 道理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對症하는 漢方으로서 다음과 같이 하였다.

  즉 調胃湯(薏苡仁 三錢 乾栗 三錢 蘿卜子 二錢 五味子 桔梗 石菖蒲 麥門冬 麻黃 各一錢)에 半夏 一錢 白朮 二錢 桃仁 紅花 各一錢 黃芩 五分을 加하여서 三日分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후 三日만에 와서는 물도 完全히 멎고 氣力도 차츰 回復되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똑같은 處方으로 十日間 服用하고 完治되었다.

  그렇다면 調胃湯加味로서 왜 完快하였을까? 하는 것을 硏究할 必要가 있다. 그러나 그 理由를 說明하려면 먼저 肺燥肝熱한 先天性이 由來한 바의 體質的 起因부터 說明한 然後에 處方을 分析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그것을 說明하기에는 時間과 紙面에 無理가 있다.(그것은 方今 筆者가 著述하고 있는 四象醫學解說에서 詳述하겠다)

  그러므로 그것은 後日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다만 그 「아우트라인」만을 論하겠다. 調胃湯은 本是 肝의 過亢때문에 肺가 燥하게 되고 肝肺가 均衡을 잃기 때문에 脾胃의 運動에 害가 미치는 同時에 衝任의 生化作用이 阻止되는 것을 治療하려는 處方인 것이다.

  이러한 理論的 根據에 依하여서 이 處方으로 調理하기로 하였거니와 調胃湯의 調理만으로써는 다시 물이 나오기 때문에 筆者는 아직도 病源이 남아있다고 生覺하고 半夏 黃芩 白朮을 加함으로써(體質的으로 無理가 있지만 할 수 없이) 血이 血海로 돌아갈 수 있는 要因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半夏 白朮 黃芩을 加한 理由는 위의 六君子湯의 解說을 參照)

  그런데 桃仁 紅花를 加한 것은 子宮의 造血作用을 妨害하는 要因으로써 瘀血이 있지 않나? 하는 기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後에 곰곰히 生覺하여본즉 이러한 경우에 半夏 白朮 桃仁 紅花를 加한 것은 그때 내가 犯했던 差誤라고 生覺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 患者에게 診療上 全혀 瘀血證이 없었고 또한 脈浮하였은즉 半夏 白朮이 必要할 理가 없다. 그런즉 다만 調胃湯에 沙蔘 黃芩을 加함으로써 足하였으리라고 生覺되는 바이다.

 人體는 神秘롭고 또한 그 運動은 帳幕속에 쌓여있다. 그러나 그 帳幕을 헤치고 神秘를 暴露하는 것이 醫學이며 哲學이다. 그러므로 筆者는 臨床秘話라고 題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이 秘話이거나 夜話이거나 或은 密語와 같은 槪念으로 論議된다면 그것은 事實上 醫道의 暗黑期임을 免할 수가 없을 것이다.

  讀者中에는 「그것은 世上이 다 알고 있는 것인데 왜 秘話냐」고 하는 反駁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의 머리에서는 아직까지도 秘話나 密語와 같이만 느껴지고 있으니 그것은 아마도 내 눈에 가리운 帳幕이 거두어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계속)

출처 : 金烏김홍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별꽃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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